옷의 온도

옷이 되기 전의 풍경 

Part 7 재생 섬유(Regemerated Fiber)


자연을 닮고 싶었던 인간의 노력

자연은 늘 인간에게 가장 위대한 스승이었습니다. 흙으로 돌아가는 낙엽을 보며 순환을 배웠고, 자연이 내어준 천연의 섬유들을 보며 그 지혜를 닮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인간은 자연을 닮은 새로운 소재를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수많은 시도와 탐구를 거듭해 왔습니다. 그 탐구는 자연의 원료로 새로운 실을 만들어 내는 재생 섬유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자연을 닮은 새로운 섬유를 꿈꾸던 연구실의 풍경(표현 이미지)

1884년, 프랑스의 화학자 일레르 드 샤르도네(Hilaire de Chardonnet)는 천연 셀룰로오스를 화학적으로 재생한 인조 실크(훗날의 레이온)를 개발하며 재생 섬유 시대의 문을 열었습니다. 

이후 셀룰로오스를 섬유로 재생하는 기술은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날 비스코스, 모달, 리오셀 등 다양한 재생 섬유를 탄생시켰습니다.

자연을 닮고 싶었던 인간의 바람이 어떻게 섬유로 구현되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우리 삶에 어떤 풍경을 남겼는지, 이제 그 문을 열어 보려 합니다.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1. 친환경이라는 다정한 이름 뒤, 공장의 풍경

재생 섬유의 탄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낯선 풍경과 마주하게 됩니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시작하지만, 그것이 옷감이 되기까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화학 공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유칼립투스와 너도밤나무가 부드러운 옷감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무의 형태를 완전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단단했던 줄기와 세포벽은 쉼 없는 공정 속에서 본래의 구조를 잃고, 오직 순수한 셀룰로오스(Cellulose)를 분리해 냅니다.

이렇게 얻은 셀룰로오스는 다시 화학 처리를 거쳐 끈적이는 점성 용액으로 변모합니다. 그리고 미세한 노즐을 통해 응고액 속으로 분사되는 순간, 용액은 가느다란 한 올의 섬유가 됩니다. 

재생 섬유는 유칼립투스와 소나무, 가문비나무, 너도밤나무를 비롯한 여러 나무의 펄프로 만들어집니다. 반면 큐프라는 목화씨에 남아 있는 짧은 솜털인 린터(Linter)에서 추출한 셀룰로오스를 원료로 합니다. 

원료가 되는 식물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식물 유래의 셀룰로오스를 바탕으로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자연의 숲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거대한 공장의 풍경으로 이어집니다. 정교한 공정을 거쳐 탄생한 부드러움은 자연 그대로의 결이 아니라, 나무에서 얻은 원료에 인간의 기술이 더해져 완성된 결실인 셈입니다.

화학의 기술이 부드러움을 빚어내는 동안, 그 이면에는 만드는 이의 땀과 자연이 묵묵히 치러야 했던 대가가 있었습니다.

2. 푸른 숲이 남몰래 흘리는 눈물

석유가 남긴 거대한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나무에서 얻은 재생 섬유에 새로운 희망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석유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그것을 더 착한 선택이라 믿곤 합니다. 하지만 그 믿음의 반대편에는 원시림의 고독한 풍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실의 원료가 되는 목재 펄프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캐나다의 고대림부터 아마존과 동남아시아의 열대우림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의 시간을 품어온 원시림이 점차 사라지고, 그 비워진 자리는 빠르게 자라는 유칼립투스와 너도밤나무 같은 단일 수종의 조림지가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나무로 채워진 숲에서 깃들 곳을 잃은 새들은 조용히 숲을 떠나갑니다. 여러 생명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던 자생력을 잃어버린 숲은, 작은 해충이나 병에도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할 만큼 약해집니다. 스쳐 지나가는 작은 불꽃조차 이겨내지 못할 만큼 위태로운 숲으로 변해 갑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여전히 초록빛 숲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던 수많은 생명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그린 사막(Green Desert)이라 불리는 단일 수종 조림지

생명의 다양성을 잃어버린 그곳은, 얼핏 생명력 넘쳐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용히 메말라 가는 '그린 사막(Green Desert)'이라 불리는 단일 수종의 숲입니다.

자연에서 온 옷을 입고 있다는 위안 뒤에, 어쩌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자연의 풍경을 조금씩 지워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과연, 겉모습만 초록빛인 그 적막한 숲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얼마나 온전히 바라보고 있을까요? 

 

3. 자연이 준 생명인가, 인간이 만든 길인가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자연이 이어온 순환과는 조금 다른 길을 지나 우리 곁에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아직 완결된 순환의 길을 찾지 못한 채,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숲에서 얻은 셀룰로오스로 면의 편안함과 실크 같은 부드러움을 구핸해 냈고, 천연자원의 활용 범위를 한층 넓혔습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섬유 산업의 의미 있는 발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했다는 사실과, 자연의 순환을 온전히 이어 간다는 것은 결코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재생 섬유는 식물에서 얻은 셀룰로오스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적절한 토양 환경에서 충분한 습도와 미생물이 갖추어지면 서서히 분해되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실 한 올이 태어나기까지, 숲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야 했고, 여러 종류의 화학약품과 막대한 에너지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생명이 숨 쉬던 숲의 일부는 정적만이 흐르는 그린 사막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생분해된다'라는 단편적인 결과만이 아닙니다. 우리 곁에 오기까지 어떤 길을 지나 나의 옷장 속 가족이 되었는지, 그 길을 돌아보는 일이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 길이 자연의 순환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지, 아니면 더 멀어지게 될지는 결국 그것을 만들어가고, 선택하는 우리의 몫일 것입니다.


다음 기록,
나무 펄프의 셀룰로오스를 원료하는 재생 섬유 이야기를 마치고, 다음 편에서는 석유 원료로 만들어진 합성 섬유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 10시에 업데이트됩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