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의 온도
옷이 된 후의 풍경
Part 4 옷과 함께 버려지는 것들
자연에 남겨진 옷, 사라지는 가치
전 세계 의류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합성섬유는 싸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인류의 옷장을 빠르게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가득 찬 옷장 속에서 어떤 옷은 한두 번 입고 밀려나고, 어떤 옷은 단 한번의 선택도 받지 못한 채 버려집니다.
옷장 밖으로 쫓겨난 멀쩡한 옷은 너무 쉽게 쓰레기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옷이 쓰레기가 되는 순간, 원료를 얻고 옷감을 짜며 옷을 만든 수많은 사람의 노동과 기술도 함께 버려집니다. 그렇게 쓰레기가 된 옷은 지구 곳곳에 거대한 산을 이루며, 되돌리기 어려운 환경적, 경제적 손실로 남게 됩니다.
가치가 사라진 채 쌓여가는 의류 쓰레기는 우리가 버린 것이 단지 낡은 옷 한 벌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더 큰 문제는 그 손실이 옷을 버리는 순간에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지금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오늘의 값싼 옷이 남긴 값비싼 대가는 결국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할 '환경 청소 고지서'가 될지도 모릅니다.
1. 버려지기 위해 태어나는 옷들
의류 쓰레기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한 시점은 2000년대 초반입니다. 글로벌 SPA 브랜드가 세계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면서, 패스트패션 문화가 일상에 자리 잡았습니다.
옷값은 저렴해지고 새로운 유행은 매주 쏟아졌습니다. 그에 따라 한두 번 입은 옷도 쉽게 버리는 소비 방식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옷은 비교적 오래 입는 '생활의 자산'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패스트패션이 확산된 이후, 옷은 일회용품처럼 소비되고 버려지는 심각한 쓰레기 문제로 번졌습니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매년 1,000억~1,500억 벌의 새 옷이 생산 됩니다. 약 500억 벌이 생산되었던 2000년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늘어난 규모입니다. 현재 전 세계 섬유 생산량 역시 연간 1억 3,200만 톤에 달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옷 중 상당수는 누군가의 옷장에 걸려 보지도 못하고 쓰레기가 됩니다. 소비자의 손길 한 번 닿지 못한 채 그대로 폐기되는 미판매 재고가 전체 생산량의 약 30%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수량으로 환산하면 무려 한 해에만 300억 벌의 새 옷이 쓰레기가 되는 셈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입다 버린 헌 옷까지 더해지면서 의류 쓰레기의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에서는 1초마다 트럭 한 대 분량의 옷이 불태워지거나 땅에 매립됩니다. 1분이면 트럭 60대, 단 1시간이면 무려 3,600대에 이르는 엄청난 양입니다.
재활용되지 못한 폐의류 가운데 약 70%는 썩지 않는 합성섬유 의류로 추산됩니다. 이처럼 옷이 재활용되지 못한 채 버려지면서 사라지는 소재의 가치는 1,000억 달러 이상, 우리 돈으로 약 150조 원에 이릅니다.
여기에 폐의류를 수거하고 처리하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과 기후 변화, 그리고 건강 피해로 인한 잠재적 비용까지 더해지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더욱 커집니다.
이토록 많은 옷은 과연 우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요? 아니면 버려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요?
2. 9개월의 면죄부, 친환경의 빈틈
글로벌 환경 학계와 언론에서 자주 인용되는 통계가 있습니다. 영국의 순환경제 전문 비영리단체 WRAP(Waste & Resources Action Programme)의 연구에 따르면, 옷의 평균 사용 기간을 9개월 늘리면 탄소·물·폐기물 발자국을 약 20~30%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연구는 옷을 오래 입는 일이 환경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 수치는 때로 기업들에 의해 '우리 옷은 내구성이 좋아 9개월 더 입을 수 있으니 친환경적'이라는 홍보 논리로 변형되곤 합니다. 옷의 실제 사용 기간은 묻지 않은 채, 소비자의 죄책감을 덜어 주는 면죄부로 활용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숫자가 말하는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요. 옷의 사용 기간을 9개월 늘리는 것만으로도 환경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쉽게 사고, 짧게 입고, 빠르게 버려 왔는지를 그대로 방증합니다.
더구나 버려지는 옷의 상당수는 합성섬유입니다. 옷을 몇 달 더 입는 일은 분명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옷 자체가 남기는 근본적인 환경적 부담까지 지워주지는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9개월 더 입었다'는 숫자에서 위안을 얻는 데 그치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진정 돌아봐야 할 것은, 단 9개월 더 입는 일이 커다란 환경적 성과로 평가될 만큼 짧아진 옷의 수명과 그 뒤에 자리한 소비 문화입니다.
요즘 도처에 쏟아지는 '친환경'이라는 말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전적 의미의 친환경은 자연을 오염시키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일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 정의에 온전히 부합하는 옷을 시장에서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옷이 지속가능한 컬렉션이라는 이름을 얻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옷도 생분해 포장재에 담겼다는 이유만으로 친환경 상품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아직 세계적으로 합의된 명확하고 통일된 친환경 의류 기준은 없습니다. 기업들은 이러한 제도적 빈틈을 노려 친환경을 흉내 낸 이름들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옷들은 저마다 그럴듯한 이름을 갖고 시장에 나오지만, 그 이름만으로 옷이 버려진 뒤의 행선지까지 바꿔놓지는 못합니다.
3. 오래 입는 일이 패션이 될 때
매일 아침 누구나 오늘의 차림새를 고민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옷이 어떤 자원에서 시작되었으며, 어떤 대가를 치른 끝에 내 옷장에 걸리게 되었는지도 물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의 성분표에 폴리에스터·나일론·아크릴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면, 우리는 오늘 옷의 형태를 한 '석유'를 입고 있는 셈입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옷을 입는다는 것은, 지구가 치러야 할 환경 청구서를 입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패션을 통해서도 우리는 지구를 살리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옷을 입는 횟수를 평균 두 배로 늘릴 경우, 패션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44%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한 벌의 옷을 오래 입는 습관만으로도 패션이 지구에 얹는 무게를 절반 가까이 덜어내는 셈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법과 제도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옷을 고르는 소비자의 까다로운 시선이 함께할 때비로소 현실이 됩니다. 이제는 가성비의 의미부터 새롭게 정의해야 합니다. 옷의 진짜 가격은 구입할 때 얼마나 저렴했는지가 아니라, 몇 계절에 걸쳐 얼마나 자주, 오래 입는가를 기준으로 가늠해야 합니다.
내구성이 좋고 자연 분해되는 천연섬유 옷을 10년 이상 정성껏 관리하며 입는 것, 이제 이러한 태도가 불편한 절약이 아니라 '근사한 소비'이자 세련된 안목으로 인정받는 문화적 전환이 필요합니다.
소비자의 깐깐한 시선은 기업의 행동을 바꾸는 실질적인 힘이 됩니다. 유행이나 그럴듯한 친환경 마케팅에 쉽게 지갑을 여는 대신, 소재와 품질, 내구성을 제대로 갖춘 옷을 가려내고 그 가치에 합당한 값을 지불할 때 시장의 기준도 달라집니다.
그럴듯한 친환경 마케팅에 쉽게 지갑을 여는 대신, 우리의 깐깐한 선택이 하나의 흐름을 만들 때 패션은 비로소 지구를 아끼는 문화가 됩니다.
합성섬유를 지양하고 천연섬유로 선택의 방향을 돌리는 것, 그것이 패션이 틀어놓은 환경오염의 수도꼭지를 잠그는 시작이 됩니다.
다음 기록,
빠르게 만들고 쉽게 버리는 패션의 시간을 지나, 다음은 슬로우 패션으로 향합니다.
매주 월요일 오후 10시에 업데이트됩니다.

앓고 있는 지구를 위한 꼭 필요한 글이네요.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공감하고 행동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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