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의 온도

옷이 된 후의 풍경

Part 1 옷은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 


침묵이 언어가 되기까지

옷은 오래도록 침묵했습니다. 추위와 비와 바람을 막아 주고, 상처 입기 쉬운 몸을 지켜 주는 것. 그것이 옷이 지닌 가장 오래된 역할이었습니다.

그 때의 옷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누구의 것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굳이 드러낼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저 몸을 감싸고 보호하는 한 조각의 천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옷은 조금씩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을 입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하게 되었고, 누구인가에 따라 무엇을 입어야 하는지도 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도 입은 옷이 다르면,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몸을 감싸던  한 조각의 천이 이제는 한 사람의 위치를 대신 말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말을 건네기도 전에, 옷이 먼저 그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그렇게 옷은 저마다의 의미를 품으며, 오랜 침묵을 지나 하나의 언어가 되어 갔습니다.


1. 색과 소재가 신분이 되던 시간

문명이 싹트고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면서, 옷은 그 사람이 놓인 자리를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색과 소재를 두르는가에 따라 신분이 구분되었고 받는 대우도 달라졌습니다.  

누가 다스리는 사람인지, 누가 어떤 역할을 맡은 사람인지를 옷이 먼저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고대 지중해 지역에서는 귀한 염료로 물들인 자주색 옷은 오직 왕과 귀족의 몫이었습니다. 지역과 시대에 따라 그 기준은 조금씩 달랐지만, 특정한 색과 소재는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붉은 자줏빛을 내는 바다 뿔고둥(뮤렉스) 한 마리에서 얻을 수 있는 점액은 겨우 한 방울 남짓이었습니다. 옷의 깃이나 테두리 정도만 물들일 염료를 얻는데에도 1만 2천여 마리가 필요했습니다. 그 귀함이 곧 자격이 되었습니다.  

귀한 염료와 수많은 손길로 완성된 길고 화려한 드레스는, 일하지 않는 고귀한 신분임을 과시하는 도구 였습니다.

옷이 한 사람의 신분을 말하던 시대

반면 평범한 사람들은 비싼 양털을 아끼기 위해 날실에는 값싸고 질긴 아마실을, 씨실에는 양털을 섞어 짠 '린지울지(Linsey-Woolsey)'같은 직물을 입어야 했습니다. 거기에 흙이나 나무껍질, 이끼 등으로 물을 들여 갈색이나 회색 계통의 어둡고 투박한 색만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세 후기, 상업으로 부를 쌓은 부르주아가 등장하면서 신분의 경계가 흔들렸습니다. 이들이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화려한 실크와 선명한 붉은색 옷을 입기 시작하자 사회는 크게 요동쳤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지배층은 신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옷차림을 제한하는 법을 제정합니다. 바로 사치 금지법(Sumptuary Laws)입니다.

특히 엄격했던 베네치아에서는 사치 단속을 전담하는 '폼페(Pompe)행정관'을 두어, 귀족 여성에게만 허용되던 목이 깊게 파인 드레스와 굽이 높은 초핀(Chopine)을 평민이 착용하면 벌금을 물렸습니다. 

세월이 흘러 기술이 발전하고 신분 제도가 사라지면서, 귀족들이 그토록 독점하고 싶어 했던 화려한 색과 부드러운 소재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2. 옷에 유행이라는 시간이 들어오다

오늘날 ‘유행’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패션(Fashion)이라는 말도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뜻을 지녔던 것은 아닙니다.

그 뿌리는 '만들다', '행하다'를 뜻하는 라틴어 파케레(facere)에 닿아 있습니다. 여기에서 만드는 행위를 뜻하는 ‘팍티오(factio)’가 생겨났고, 옛 프랑스어 ‘파숑(façon)’을 거치며 무언가를 만드는 방식이라는 의미로 이어졌습니다.

신분이 옷을 정하던 오랜 시대가 지나면서, 옷은 조금씩 다른 리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십자군 전쟁 이후 상업이 발달하고 재단 기술이 발전하면서, 귀족들은 자신들의 우월한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옷의 형태, 색상, 장식을 주기적으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이 흐름 속에서 신체의 곡선을 살린 입체적인 의복이 등장했고, 바로 이 지점에서 유행이라는 개념이 처음 태어났습니다.

누군가는 자신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옷을 따라 입고 싶어 했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과 구별되기 위해 다시 새로운 모습을 찾았습니다. 같은 집단에 속하고 싶은 마음과 그 안에서도 다르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맞물리면서, 옷의 형태는 이전보다 빠르게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14세기 무렵 영국으로 건너온 이 말은 중세 영어 파시온(Facioun)이 되어 여러 의미 가운데 옷의 형태와 차림새를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변화가 깊어지면서, 15세기 후반부터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옷차림을 뜻하게 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패션과 유행이라는 의미로 발전했습니다.

이후 근대로 접어들며 패션은 단순한 개인의 취향을 넘어 국가의 권력과 산업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17세기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있었습니다. 그는 강력한 절대 왕정을 구축하며 국가 주도로 사치 산업(섬유, 패션)을 육성했습니다.

베르사유 궁정의 화려한 복식은 왕의 권력을 보여 주는 무대가 되었고, 프랑스 궁정의 취향은 유럽 전역이 다투어 따라 하는 패션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만들다'라는 뜻에서 출발한 어원이 '유행'이라는 의미로 확장되는 과정은, 옷이 시대의 변화를 담아 온 역사와 꼭 닮아 있습니다. 같은 신분 안에서도 이전의 옷과 새로운 옷이 구별되기 시작했고, 옷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요구받았습니다.

옷은 여전히 계급의 언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언어에, ‘지금’이라는 시간의 언어가 하나 더해지면서, 무엇을 입었는가뿐 아니라, 얼마나 새로운가도 중요해지기 시작했습니다.옷에 유행이라는 시간이 들어온 순간,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은 다음 계절의 언어로 남게 됩니다.
 

3. 유행이라는 이름의 시간, 그리고 나라는 언어

신분이 옷을 정하던 엄격한 시대가 서서히 물러나면서, 옷은 또 한 번의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됩니다. 단순히 몸을 지키거나 계급을 보여 주는 것을 넘어, 한 사람의 마음이 되고, 관계가 되며, 욕망과 기억을 담아내는 언어가 되어 간 것입니다. 

귀족들의 전유물에 가까웠던 패션과 유행이 대중의 삶 속으로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후반, 산업혁명 이후였습니다. 기계로 생산한 직물과 재봉틀의 보급은 옷을 만드는 속도를 높였고, 더 많은 사람이 새로운 옷차림을 접하고 유행을 따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 한 재단사가 패션 역사에 결정적인 장면을 만들어 냅니다. 찰스 프레더릭 워스(Charles Frederick Worth)는 1858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패션 하우스를 열며 디자이너 패션 시대의 막을 올렸습니다. 

그는 완성된 옷을 마네킹이 아닌 사람(자신의 아내)에게 입혀 선보였던 그의 방식은 오늘날 현대 패션쇼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한 해에 두 번, 디자이너가 미리 의상을 기획해 컬렉션을 발표하는 현대적 시스템 역시 이때 정립되었습니다.

이제 패션은 계급의 언어에서 시간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어느 신분에 속해 있는가 보다, 시대의 새로움을 얼마나 빠르고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지가 옷의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태어난 자리가 평생 입을 옷을 결정하지 않는 시대. 사람들은 이제 자신이 속한 계급이 아니라,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에 따라 옷을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생존을 위해 태어난 옷이 신분을 거쳐, 마침내 한 사람 그 자체를 말하게 되기까지, 참 먼 길을 걸어온 셈입니다. 

그렇다면 매일 아침 옷장 문을 열고 '오늘의 나'를 고르는 순간, 그  아득한 시간을 지나온 옷의 온도는 몇 도쯤 될까요.

 

다음 기록,
옷이 패션이 되어 온 시간을 지나, 이제 그 화려함 뒤에 남긴 무게를 바라봅니다. 다음 글에서는 패션이 지구에 남기는 발자국에 대해 기록합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 10시에 업데이트됩니다.



댓글

  1.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옷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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