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의 온도

옷이 되기 전의 풍경 

Part 10 비건 패션(Vegan Fashion)


동물을 위한 선택, 자연을 위한 질문

생명이 살아 가는 길

우리는 때때로 하나의 이름 앞에서 안도감을 느낍니다.

'친환경', '재활용', 그리고 '비건(Vegan)'.

그 이름들은 마치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있다는 작은 확신을 우리에게 건네줍니다. 특히 비건 패션은 동물을 해치지 않는다는 분명한 가치와 함께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왔습니다.

2000년대 이후 동물 복지와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움직임은 패션으로도 번져가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대 후반에는 여러 패션 브랜드가 모피 사용을 중단하는 퍼 프리(Fur-Free)를 선언하며 변화에 힘을 보탰습니다. 

그리고 2019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처음으로 비건 패션 위크(Vegan Fashion Week)가 열리며, 동물을 위한 새로운 선택으로서 비건 패션의 흐름도 본격화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선택이 그렇듯,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은 또 다른 질문을 불러옵니다.

동물을 위한 선택은 과연 자연에게도 같은 의미일까요?


1. 동물을 입지 않으려는 마음

비건 패션은 소재가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오랫동안 인간은 동물에게서 얻은 가죽과 울, 그리고 비단을 옷의 소재로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동물을 대하는 방식과 그 과정에 대한 윤리적 질문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모피를 둘러싼 논란은 우리가 입는 옷과 동물의 삶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동물을 해치지 않고도 아름다운 옷을 만들 수는 없을까."

비건 패션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었습니다. 동물의 가죽과 모피를 대신할 다른 소재를 찾으려는 시도에는 단순히 새로운 옷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넘어, 생명을 존중하고 희생을 줄이려는 바람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비건 패션은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선택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그 다정한 선택이 플라스틱이라는 소재로 이어질 때, 그 마음은 과연 또 다른 존재가 숨 쉬는 터전까지 헤아리고 있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일입니다. 

생명을 향한 마음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넓은 곳까지 닿아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2. 버섯과 선인장, 사과가 들려주는 이야기

동물을 대신할 새로운 소재를 찾기 위한 노력은 예상보다 훨씬 다양한 방향으로 이어졌습니다.

버섯 균사체를 비롯해 선인장과 사과 껍질, 한지 등을 활용해 가죽을 대신하려는 새로운 시도들이 하나둘 등장했습니다. 

여기에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기준에 따라 재활용 페트병으로 만든 폴리에스터와 그 밖의 석유계 합성 섬유도 비건 패션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한 소재들은 마치 식물과 기술이 함께 만들어 낸 새로운 가능성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소재들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또 다른 이야기와 만나게 됩니다.

식물성 원료를 활용한 천연 가죽 대체 소재 가운데에는 내구성과 형태 유지를 위해 폴리우레탄(PU)이나 폴리염화 비닐(PVC)과 같은 합성수지를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식물에서 얻은 원료만으로는 천연 가죽을 대신할 만큼 충분한 강도와 안정성을 갖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식물성 비건 소재는 단순히 식물만의 산물이 아니라, 식물에서 얻은 원료에 화학적 기술이 더해져 만들어진 복합 소재에 가깝습니다. 

동물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 했던 노력에는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식물'이라는 이름 너머에 무엇이 더해져 있는지는 또 다른 질문으로 남습니다.


3. 이름표보다 먼저 보아야 할 것

오늘날 우리는 친환경, 재활용, 비건 등 저마다의 의미를 담은 옷과 가방, 구두 앞에서 선택을 고민합니다.

이러한 수식어들은 복잡한 선택의 순간에 하나의 기준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이름만으로는 소재가 지나온 모든 과정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 비건이 지켜 온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러나 그 가치가 곧 소재의 원료와 생산 과정, 사용되는 자원과 에너지, 그리고 버려진 뒤에 흐르는 시간까지 모두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소재는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지만 석유에서 시작되고, 어떤 소재는 식물에서 시작하지만 여러 합성수지와 결합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또한 새로운 대체 소재의 생산에도 토지와 물, 화학 공정과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그렇다고 이 모든 시도와 노력이 의미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동물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소재를 찾고 기술을 발전시켜 온 노력 역시, 우리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귀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비건’이라는 이름이 그 모든 과정에 대한 완전한 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답은 비건인가, 아닌가'라는 구분이 아니라 소재의 본질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대의 언어를 무조건 믿거나 의심하는 일이 아니라, 그 언어 뒤에 놓인 시간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일일 것입니다.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무엇과 결합되었는지,
만드는 동안 무엇을 지켜 내고 또 소모했는지
그리고 쓰임을 다한 뒤에는 지구의 어느 자리로 돌아가는지.

그 소재가 어떤 생명과 자원, 그리고 시간의 이야기를 품고 우리 곁에 오게 되었는지 알아채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옷을 바라보는 온전한 시선이 아닐까요.


다음 기록,
소재의 본질을 찾아 떠났던 「옷이 되기 전의 풍경」을 마치고, 이제 「옷이 된 후의 풍경」으로 향합니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기 시작한 옷은 언제부터 입는 사람을 표현하는 패션이 되었을까. 다음 글에서는 옷이 패션이 되어 가는 과정과 그 안에 담긴 시대의 마음을 기록합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 10시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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