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의 온도
옷이 된 후의 풍경
Part 7 소재라는 본질, 옷을 입는 존재 방식
패션, 삶의 태도가 되다
패션의 범주는 과거 무엇을 입는가(Clothing)에서 현재 어떻게 살아가는가(Lifestyle)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고급스러운 아름다움은 시대를 초월하는 패션의 궁극적인 지향점입니다.
오늘날 그 아름다움은 단정한 옷차림은 물론 세련된 말투와 사용하는 소품, 머무는 공간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삶 전반에서 배어 나오는 분위기로 완성됩니다.
패션은 언어를 넘어선 소통입니다. 사람들은 처음 만난 상대의 차림새를 통해 찰나의 순간에도 많은 것을 직감합니다. 옷의 소재와 실루엣, 그리고 색은 그 사람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대변합니다. 말 한마디 나누기 전,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세상에 건네는 첫 인사가 바로 옷차림입니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소유냐 존재냐』에서 테니슨의 꽃과 바쇼의 냉이꽃을 대비하며, 소유적 실존 양식과 존재적 실존 양식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이는 사물과 삶을 대하는 서로 다른 태도이며, 오늘날 우리가 옷을 선택하고 입는 방식에서도 그대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옷을 통해 무엇을 드러내며, 무엇으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것일까요.
1. 테니슨의 꽃: 내가 옷을 입는가, 브랜드가 나를 입는가
갈라진 벽 틈새에서 뿌리째 뽑힌 작은 꽃
영국의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은 갈라진 벽 틈에 피어난 꽃을 뿌리째 뽑아 손에 듭니다. 그리고 이렇게 읊조립니다. ‘작은 꽃이여, 너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면 신과 인간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으련만.’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그것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욕망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갈라진 벽 틈에 피어난 꽃 대신, 화려한 쇼윈도 안에서 피어난 '브랜드'라는 꽃을 통해서 말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패션은 몸을 보호하는 기능을 넘어섰습니다. '나는 내가 입은 브랜드로 증명된다'고 믿는 태도는 소유적 패션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때로 옷의 소재나 만듦새, 실용성보다는 브랜드가 지닌 이미지와 역사, 그리고 그것이 상징하는 사회적 지위를 소비하곤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럭셔리 브랜드의 가방이나 옷을 소유해야 비로소 자신의 가치가 완성된다고 믿는 것은, 그것을 자신의 안목과 능력을 증명하며 타인과 자신을 구별 짓는 명함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는 결국 소유가 존재를 대신하게 된 현대인의 씁쓸한 실존 양식을 보여줍니다.
그 이면에는 브랜드가 지닌 상징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함으로써, 내면의 공허를 감추려는 현대인의 방어 기제가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꽃이 뿌리째 뽑히는 순간 생명력을 잃듯, 물질과 브랜드에만 기대어 세운 정체성은 쉽게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유행이 바뀌고 브랜드의 소비재 가치가 떨어지면, 그것으로 증명하려 했던 '나'의 가치도 함께 퇴색하기 때문입니다.
테니슨이 꽃을 소유함으로써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려 했다면, 소유적 패션에 기댄 현대인은 옷과 브랜드를 소유함으로써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하려 애씁니다.
소유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이제 꽃을 꺾지 않고 바라보았던 하이쿠 시인의 시선에 주목하게 됩니다.
2. 바쇼의 냉이 꽃: 나는 옷을 통해 나를 표현 한다
길가에 피어나 냉이꽃
일본의 하이쿠 시인 마쓰오 바쇼는 '자세히 보니 울타리 옆에 냉이꽃이 피어 있구나'라고 읊으며, 길가에 무심히 피어난 작은 냉이꽃을 꺾지 않은 채 바라봅니다. 테니슨이 꽃을 뿌리째 뽑아 손에 넣음으로써 본질을 파악하려 했다면, 바쇼는 소유하려 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교감했습니다.
이를 패션에 대입해 보면, 타인의 시선이나 브랜드의 상징성을 소유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 옷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존재적 패션의 태도와 닮아 있습니다.
존재적 패션은 '나는 옷을 통해 나를 표현한다'는 선언입니다. 이러한 태도를 추구하는 사람은 과시적인 브랜드 로고나 빠르게 변하는 유행에 자신의 취향을 맡기지 않습니다.
대신 겉으로 과시하지 않아도 자신의 가치관이 담긴 옷,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 옷을 선택합니다. 그런 옷에서는 길가에 핀 냉이꽃처럼, 옷을 입는 사람의 고유한 존재감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옵니다.
존재적 패션은 이처럼 나다움을 완성해 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내면의 서사를 표현하는 조용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과 가치관에 충실한 패션이기에, 유행이 바뀌고 브랜드의 상징성이 빛을 잃어도 자신의 정체성은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화려한 장미가 아닌, 작고 소박한 냉이꽃에서 바쇼가 깊은 울림을 발견했듯, 패션의 아름다움 또한 타인이 정한 화려한 상징에만 있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정해 놓은 브랜드 가치에 나를 짜 맞추기보다 옷을 통해 나를 표현할 때, 우리는 자신의 주체성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진짜 '나'라는 꽃을 피워낼 수 있습니다. .
테니슨의 꽃이 소유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는 태도를 담고 있다면, 바쇼의 냉이꽃은 삶 속에서 자기답게 존재하는 자유를 이야기합니다. 무엇을 입을 것인가에 답하는 일은 결국 내가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입니다.
'옷을 입은 나는 누구인가.' 그것이야말로 냉이꽃이 오늘날 우리의 옷장에 건네는 단단한 질문입니다.
3. 소재, 삶을 대하는 태도
에리히 프롬의 소유와 존재, 이 오래된 두 태도는 옷 앞에서도 여전히 갈라섭니다. 옷을 선택하는 기준을 들여다보면, 두 태도의 차이는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바로 '소재'입니다.
실크 셔츠 위에 폴리에스터 재킷을 걸쳤을 때와, 같은 셔츠 위에 결이 살아 있는 울 재킷을 걸쳤을 때, 두 조합은 전혀 다른 인상을 남깁니다.
소재끼리 서로의 결을 존중하며 만날 때 옷차림은 비로소 조화를 이룹니다. 아무리 이름난 고가품이라도 결이 다른 소재들이 무심하게 뒤섞이면 어딘가 어긋나 보입니다. 고급스러움은 소재를 이해하고 그에 어울리는 옷을 함께 입는 안목에서 배어 나옵니다.
소재를 이해하는 일은 옷을 조화롭게 입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한 벌의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소재는 디자인과 바느질의 기준이 됩니다. 아무리 뛰어난 디자인이라도 소재가 형태를 지탱하지 못하면 그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어렵고, 좋은 소재의 성질에 대한 이해와 정교한 바느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좋은 옷이 될 수 없습니다.
소재가 출발점이라면 디자인은 방향이며, 바느질은 이를 현실로 완성해 내는 장인의 숨결입니다.
옷을 디자인과 유행으로만 바라볼 때 우리는 빠르게 소비되고 교체되는 이미지에 머물기 쉽습니다. 그안에 담긴 소재의 시간과 만드는 이의 기술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한 벌의 옷이 지닌 깊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가치를 알아보는 시선에서 나만의 스타일이 시작됩니다. 시장이 제안하는 흐름 속에서도 어떤 소재와 만듦새가 나에게 어울리는지 살피고, 자신의 감각으로 옷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테니슨과 바쇼의 꽃을 패션에 빗대어 본다면, 브랜드의 상징으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태도는 소유에, 옷에 담긴 가치를 알아보고 나만의 결을 표현하려는 태도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스타일은 그렇게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선택하며 서서히 깊어집니다.
오늘 나의 옷차림 소유 양식(Having Mode)에 머물러 있는지, 아니면 존재 양식(Being Mode)을 향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까요.
다음 기록,
캐시미어·울 코트의 선택 기준과 함께 입는 옷의 조화, 그리고 올바른 관리 방법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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